[더스타트 기획칼럼] 디지털복지, 기술의 속도에 사람을 맞추지 말라

[이종구의 디지털복지③] 디지털 소외,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박기영 기자 / 기사승인 : 2026-10-26 09: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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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못 배우나’보다 ‘왜 혼자 배우게 했나’를 물어야 한다
▲ 이종구 디지털콘텐츠그룹·SNS소통연구소 대표

'왜 못 배우느냐'는 질문을 '왜 배울 수 없게 됐느냐'로 바꿔야 한다 "조금만 배우면 되는데 왜 못 할까." "요즘 세상에 스마트폰도 못 쓰면 어떡하나." 이 말은 현장에서 자주 듣는다. 당사자가 아니라, 곁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어쩌면 이 말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을 가장 잘 드러낸다. 우리 사회는 디지털 소외를 여전히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본다.

그러나 그 시각은 틀렸다. 디지털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못한 사회가 문제다. 인구 구조와 기술 속도가 충돌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다. 2025년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전체의 20.3%를 넘어섰고(통계청, 2025년 고령자 통계), 2036년에는 30%, 2050년에는 40%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매년 50만~60만 명이 새로 고령층에 편입되고 있다. 그런데 사회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공공서비스, 금융, 의료, 교통, 행정의 디지털화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 두 흐름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금,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예견된 결과다.

이것은 개인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사회 설계의 실패다. 지금의 고령층은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난 세대가 아니다. 학교에서 컴퓨터보다 교과서를 먼저 배웠고, 직장에서 스마트폰보다 전화기를 먼저 사용했으며, 일상에서 앱보다 사람을 먼저 만났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회 전체가 디지털을 기준으로 재편되었다. 준비할 시간은 없었고, 연습할 기회도 충분하지 않았다.

교육을 받아도 왜 달라지지 않는가 "교육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다. 실제로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스마트폰 교육, 디지털 리터러시 강좌가 열린다. 그런데 현장에서 오래 일해보면 한 가지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교육을 받아도 생활이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 본 이미지는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가 그린 이미지입니다.

이유는 구조에 있다. 강의장에서 배운 것을 집에 돌아가서 혼자 써보려 하면 막힌다. 다시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다. 앱은 업데이트되고 화면이 달라진다.

며칠 사용하지 않으면 기억이 흐릿해진다. 결국 배우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로 돌아간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생기는 심리적 결과다. "나는 역시 못 하는 사람이다." 한 번 그런 결론에 이르면, 다시 배우려는 의지가 사라진다.

디지털 소외는 이렇게 고착된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3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층의 디지털 역량 격차는 기기 보유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만 전화와 문자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비율이 여전히 높다. 기기를 제공하고 교육을 했지만, 생활 속 활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적 한계가 이를 만들어냈다.

'개인 책임론'이 왜 위험한가 디지털 소외를 개인의 문제로 보면, 정책은 "더 많이 가르치면 된다"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예산은 교육 사업에 집중되고, 교육이 끝나면 결과가 나왔다고 본다. 그러나 교육은 조건일 뿐이고, 조건만으로 결과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더 위험한 것은, 개인 책임론이 디지털 소외를 경험하는 당사자에게 수치심을 심는다는 점이다.

"노력하면 할 수 있는데 못 한다"는 시선은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더 위축시킨다. 그리고 그 위축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더 깊은 고립으로 이어진다. 현장에서 어르신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배워도 금방 잊어버리는데 다시 물어보면 미안하다." 이 말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도움을 청할 구조가 없다는 사회의 문제다.

▲ 본 이미지는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가 그린 이미지입니다.

구조를 바꾸는 것이 해답이다 디지털 소외를 해결하려면 개인의 의지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조건을 바꿔야 한다.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 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갖춰질 때 비로소 디지털은 삶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초고령사회로 가는 지금, 이 구조를 만드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고령 인구가 늘어날수록 디지털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늘어나는데, 공공서비스는 더 빠르게 디지털 중심으로 바뀐다. 이 흐름이 계속되면 사회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을 배제하게 된다. 그 비용은 결국 사회 전체가 치르게 된다.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정책의 기준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개인 책임론을 넘어서려면 먼저 구조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지역별·연령별·서비스 영역별 디지털 격차를 정기적으로 측정하고 공개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측정되지 않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수료하면 끝나는 단기 강좌 방식으로는 생활 변화를 만들 수 없다. 생활 반경 안에서 언제든 다시 배우고, 다시 물어볼 수 있는 상시 지원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영국의 '디지털 챔피언' 모델처럼, 지역사회 내에서 자발적으로 서로를 돕는 네트워크를 함께 형성하는 것도 유효한 방법이다.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이 서비스를 디지털화할 때, 그 변화가 취약계층에게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캐나다가 도입한 '알고리즘 영향 평가' 제도처럼, 기술 도입의 편익뿐 아니라 배제의 위험도 함께 따져야 한다.

 

 

■ 이종구의 디지털복지 연재

① 왜 지금 ‘디지털복지’인가
② 디지털은 선택이 아니라 생활의 조건이다
③ 디지털 소외,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④ 키오스크 앞에서 멈춘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일상이다
⑤ 기기를 줬는데 왜 삶은 달라지지 않았나
⑥ 복지가 있어도 접근하지 못하면 없는 것과 같다
⑦ 디지털 격차가 새로운 빈곤을 만든다
⑧ 초고령사회, 디지털복지는 국가 과제다
⑨ 스마트폰 하나가 삶의 주도권을 바꾼다
⑩ AI 시대, 복지도 디지털을 전제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⑪ 디지털복지는 교육사업이 아니라 사회 인프라다
⑫ 디지털복지, 미래가 아니라 지금의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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